희망story란 희망복지지원단의 주요 업무인 ‘통합사례관리’ 업무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제보를 원하시는 희망복지지원단은 맨 하단 [작성양식]을 다운로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희망e야기는 부산 강서구의 신혜영 통합사례관리사께서 제보해주신 사례입니다. 부양의무자 조건으로 인해 지원이 제한되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지 못해 삶의 어려움을 겪던 영순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엄마의 역할을 찾아준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왜 나만 도와주지 않는 건가요?”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인 습성일까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강력한 비교 DNA를 가지고 있던 부산 강서구의 유명인사 ‘영순’씨입니다.
사람들은 영순씨를 기피합니다. 영순씨가 동주민센터와 구청에 찾아와 무턱대고 소리를 지르며, 하소연 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은 큰소리치다 제 풀에 지쳐 그 자리에서 잠들기도 합니다.
통합사례관리를 받기 전 영순씨는 남과 자신의 형편을 비교하며 한탄했습니다. 자신보다 살림살이가 넉넉한 사람은 도와주면서 불쌍한 자기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소리치며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뜨거운 여름, 영순씨를 만나다”
더운 7월의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동주민센터로부터 구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영순씨를 주민센터에서는 더 이상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구청의 ‘통합사례관리’를 통해 도움을 달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영순씨의 집에 찾아가는 날, 습도가 높아 찐득한 날씨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집에 도착해 인사를 나눈 뒤 좁은 방안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영순씨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격하게 풀어놓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통합사례관리사는 흩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연결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다”
영순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여 세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차남을 낳자마자, 아들이 없는 큰집에 뺏기듯 양자로 보냈습니다. 남편은 갑작스럽게 병사하였습니다. 궁핍한 영순씨는 남은 두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은 중학교 졸업 후에 집을 나갔고, 막내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몇 년 전 집을 나갔습니다.
혼자 생활하던 영순씨는 부업으로 그물 끼우는 작업을 하던 중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뇌경색 진단을 받고 급히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간병비와 병원비 부담이 컸기 때문에 금세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 영순씨는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좌측 수족이 마비되어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소일거리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인 큰 아들의 소득초과로 인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부양의무자인 큰 아들에게 연락하다”
상황을 파악한 후 큰 아들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영순씨의 부양의무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목소리를 바꾸었습니다. 동주민센터와 구청에서 영순씨의 일로 몇 차례 연락하여 괴롭힘을 당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영순씨의 과거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삶에 치여 자녀들이 필요로 했던 사랑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야속했지만,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일한 소득이 있는 큰 아들은 연락을 끊었습니다. 차남의 상황을 확인해보았습니다. 큰 집에 큰 아들로 보내진 차남은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간 후, 업무 중에 큰 화상을 입게 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장성한 아들을 세 명이나 두었지만, 어느 누구도 영순씨를 도와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립무원(孤立無援, 외로이 서서 도움받을 곳이 없음)의 상황에 놓인 영순씨는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공적 부조의 혜택에서 조차 외면을 받자 더욱 억척스러워졌습니다.
“긴급지원 신청 후, 미뤄왔던 병원치료를 받다”
자식들에게 부양 받을 수 없고, 거동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영순씨는 일을 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통합사례관리사가 보기에도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받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당장의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지원’을 신청했습니다. 3개월 간 40만원씩의 지원을 받기로 하였고 그 기간 동안 ‘뇌병변 장애판정’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장애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순씨는 차량으로 한 시간이 넘는 대학병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차일피일 치료는 미뤄졌습니다. 보행기 없이는 걸을 수 없어 택시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지원금에 의지하는 영순씨에게 택시비는 큰 지출이었고, 병원치료마저 사치였습니다.
그러나 영순씨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영순씨는 희망복지지원단의 도움으로 긴급지원금과 후원금을 보태어 미뤄왔던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재활치료도 받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구청, 동주민센터, 지역사회복지관은 협업하여 영순씨에게 필요한 후원금과 성금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영순씨는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계속적인 경제적 지원이 감당되지 않으면 생활은 언제든지 어려워질 수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주위가 캄캄해지면 영순씨의 걱정은 꼬리를 물고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극도의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영순씨는 잠을 설치는 날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불안한 마음도 사라질 것 같아요” 입버릇처럼 영순씨는 말했습니다.
“60살 영순씨,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다”
영순씨는 거동이 불편합니다. 60살이 되었지만 먼 시내 구경은 꿈꿔볼 수도 없었습니다. 강서구 희망복지지원단은 영순씨의 자립능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한 뒤 ‘지하철 타는 방법’을 알려주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안전한 보행을 위해 튼튼한 보행기부터 준비했습니다. 함께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구입한 뒤, 요금을 충전하는 법도 알려드렸습니다.
몇 번의 모의 시범 후 영순씨 혼자 지하철을 타던 날이었습니다.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저 지금 덕천동에 와 있어요. 지하철 타고 왔어요. 공중전화가 있는데 선생님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후훗.”
영순씨의 들뜬 목소리에는 뒤늦은 경험에 대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0분 만에 갈 수 있는 덕천동을 2시간에 걸쳐 도착한 영순씨이지만 그녀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뻐보였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생계비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후원금을 신청하였습니다. 희망복지지원단, 관련 기관, 영순씨 등 모두의 노력 끝에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고, 재신청한 기초생활수급에서 ‘적합’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순씨가 그토록 기다렸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이 되었지만, 큰 아들의 부양비 부과로 월 10만원의 생계비만이 지원되었습니다. 10만원의 생계비에서 영순씨의 월세 8만원을 지불하면, 한 달 생활비는 2만원 밖에 남지 않습니다. 몇 개월 간 노력했던 영순씨는 실망했습니다.
장애판정을 받기 위해 움직이기 버거운 몸을 이끌고, 영순씨를 태우기 꺼려하는 택시를 타며 큰 지출을 감수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5년 7월 맞춤형복지제도 개편, 한 명의 인생을 바꾸다”
2015년 7월, 맞춤형복지제도가 실시된다고 공지되었습니다. 새로운 정책으로 영순씨를 도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기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 7월이 다가왔습니다. 생계비, 주거비, 장애수당까지 월 약 40만원의 지원금을 영순씨가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해가 지난 여름, 물기 가득한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영순씨를 다시 만나러 갔습니다. 지원금이 월 40만원으로 높아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소식을 전하자 영순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년 여름, 영순씨는 눈물을 흘리며 본인의 상황을 비관하였습니다. 한 해가 지난 영순씨도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순씨, 그렇게 다시 엄마가 되다”
얼마 전 영순씨는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를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큰 아들에게 영순씨는 말했습니다.
“잘 사는가 싶어 전화했다. 이제 엄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서 니 도움 안 받아도 살 수 있다.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전화는 받아라. 이제 니한테 짐은 안 될끼다.”
이야기를 들은 후 큰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영순씨는 울며불며 도와달라고 전화하는 대신 아들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더 없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아들에게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는 영순씨였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엄마로 그녀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잊고 지냈던 진짜 엄마의 역할이었습니다.
되찾은 엄마의 역할을 통해 영순씨와 아들 모두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 해 여름은 영순씨의 식탁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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