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관리 정책지원센터 웹진 [희망e야기]

정책 및 이슈

전문가 Talk

전문가 기고문

저장강박 사례개입이라는 미담 내러티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기연 교수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인간은 수집과 저장을 바탕으로 생존하고 번성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서 목축과 농경의 시대를 거치면서 효과적으로 수확하고 의도적으로 저장하는 사람으로 진화해왔을 것이다. 수집과 저장은 사회경제적인 계급의 분화와 소유와 분배의 갈등, 풍요와 빈곤, 개인이 체감하는 주관적 결핍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증폭 등으로 자본주의와 상업주의 사회의 빛과 그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미니멀 라이프가 새로운 삶의 방식 혹은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선망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물질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저장하고 가공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관련한 혁신의 시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혹은 4차산업이라 불리는 시대에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다. 즉 그것이 물질이든 비물질적이든 수집과 저장이라는 인간의 행동 혹은 삶의 방식은 심리적인 영역에서부터 경제영역, 나아가 철학의 영역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즉 그것이 물질이든 비물질적이든 수집과 저장이라는 인간의 행동 혹은 삶의 방식은 심리적인 영역에서부터 경제영역, 나아가 철학의 영역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소유냐 존재냐 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 에리히 프롬은 소유(having)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에 더 불만족스러워하고 인간관계가 물질로 대체되고, 자신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자신을 소유하는 것으로, 소유의 주체와 객체가 역전되는 현상을 통찰하고 있다. 반면 존재(being)를 지향하는 사람은 물질적 소유보다 심리적 체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기꺼이 공유하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추구한다고 한다.

이렇듯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사적인 생활 방식처럼 보이는 수집과 저장이 사회문제화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00년대초반에 등장한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조어는 풍요를 뜻하는 affluent 와 독감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로, 물건의 소비가 처음에 기대했던 만족감과 행복감이 아니라 낭비, 부채, 자책, 무기력이라는 증상을 유발한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어플루엔자에 걸린 사람은 더 많은 물건과 더 좋은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노동시간을 자초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박탈감, 결핍감, 우울감, 나아가 분노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철학적 통찰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어플루엔자’라는 감염병으로 희화된 진단이 붙여질 만큼 수집과 저장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만연하고 있다. 급기야 집안과 밖에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치우거나 정리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의 건강이나 안전의 문제, 냄새와 해충 등 위생상의 문제나 적치물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 유발 등 이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해결을 위한 책임의 주체 역시 개인이 아닌 공적 주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공공사례관리의 도입과 확산과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장장애(Hoarding Disorder)는 쓰레기와 같은 잡동사니 물건들을 과도하게 모으고 이러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집안 내에 쌓아둠으로 인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심리적 장애를 말한다.
저장장애는 흔히 우유부단, 완벽주의, 회피행동, 꾸물거림, 주의 산만성 등과 함께 나타난다(DSM-5, 2015). 그리고 계획수립능력과 조직화 능력에 결함이 있어서 잡동사니를 처분하지 못하므로, 위생문제와 건강문제가 우려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흔한 저장장애의 유형은 물건 저장으로 신문, 책, 오래된 옷, 잡지 등을 저장하는 유형이 있음. 이외에도 저장장애의 특수한 유형인 동물 저장장애(Animal Hoarding)는 극단적으로 심각한 위생 문제와 건강문제가 함께 나타나며, 거의 모두 자신의 저장행동에 대한 병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지역사회의 ‘앓던 이’에 해당하는 ‘정신질환자’ 와 ‘잡동사니’사례에 대한 개입이 공공사례관리영역에 최우선 순위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가구나 사례는 ‘저장 강박 사례’로 불리며, “쓰레기더미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위험에 처한 가정에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공공사례관리의 이름으로 당연하고 정당하게 개입하여 지역주민들의 협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엄청난 물량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소독과 방역을 실시하였다.
깨끗하게 도배·장판 후 새로운 가재도구와 전자제품으로 바뀐 환경을 제공하거나 개선된 환경으로 이사하도록 하고, 이에 더하여 기초생계의 보장과 정신질환자의 입원 치료 등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라는 ‘미담’ 내러티브로 소개된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초창기 공공사례관리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이러한 성과를 위해 모든 지역으로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확산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미담’ 내러티브는 개입 이후에도 반복되는 문제, 개입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 직면하였다.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에 대한 인권 이슈, ‘쓰레기’ 처리 이후의 법적 분쟁 등 초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단기간의 일방적인 개입’이라는 방법 자체와 그 효과성에 의문을 품게 됨으로써 그 내러티브의 힘이 약화 되고 있다.

더구나 거부나 저항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빠른’개입과 쓰레기의 ‘처리’에만 초점화된 개입 방향과 이에 대한 다양한 주체로부터의 압박은 사례관리자의 업무부담 증가와 소진 등의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특히 법률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그동안의 개입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과 좀 더 전문화된 혹은 표준화된 대응의 필요성이 촉구되고 이에 부응하기 위한 연구나 매뉴얼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그간의 우리의 개입방식과 관점에 변화가 필요한, 관련한 문제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장에서 저장장애를 정신과적 진단 없이 ‘확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저장 행동을 할 수 있으며, 그 원인에 대한 충분한 탐색이 필요한데 환경적으로 드러나는‘잡동사니’라는 물증만으로‘저장장애’혹은 ‘저장 강박’ 이라는 진단명 혹은 진단을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사자에게 낙인감을 심어주고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저장 행동을 보이는 사례의 상당수가 민원에 의해 개입이 시작되는 특성에 따라 민원 해결 차원에서 청소 등이 법적 근거나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아가 강제로 이루어지며 이로 인한 사례관리자의 부담감만이 아니라 재산 손실에 대한 책임이나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사고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가구의 주거유형이나 질병 형태별로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나 기존 통합사례관리의 획일적인 절차와 시간계획으로 인해 부실한 사정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대상가구의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관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나 통합사례회의, 역할 분담, 모니터 체계 등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세부 내용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발굴이나 의뢰요청을 받은 기관이 주사례관리기관이 되거나 주사례관리기관이 문제해결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게 됨으로써 주사례관리기관이 엄청난 부담과 문제해결 능력 부족으로 사례관리에 난항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업무매뉴얼은 ‘저장장애 ’사례를 지원하는 데 필수적이나, 법정급여나 서비스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추가 자원 확보와 개입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다차원적인 방안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저장 행동의 이면을 보기 위한 노력과 함께 새로운 실천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저장장애’ 사례관리실천 원칙

  • 수집과 저장의 병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당사자가 부여하는 의미와 동기를 탐색한다.
  • 사회적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당사자의 개인 영역과 사적 공간을 존중한다.
  • 공감과 존중으로 사적 권한을 최대화하며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 ‘저장장애’로 인한 사회적 압박의 대리인이 아니라 옹호자의 위치에 선다.
  • 진단명=사람이 아니며, 환자 이전에 지역사회의 주민임을 재인식한다.
  • 의료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일상을 보살피는 것과 당사자의 사회적 기능과 이웃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둔다.
  • ‘잡동사니’와‘쓰레기’에 대한 관심을 넘어 편견과 낙인으로 사회적 배제와 고립상태에 있는 당사자의 위치성에 주목한다.
  • ‘잡동사니’와‘쓰레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지닌 이웃이나 기관과의 소통과 중재를 통해‘다르게’접근할 수 있는 이해와 기회를 제공한다.
  • 재발도 회복의 과정이다. 이전의 재발과는‘다른’재발이 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한다.
  • 변화에 필요한 시간은 물건이 축적된 시간 이상 걸린다. 당사자의 삶의 속도에 맞춘다.

이러한 실천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역동을 조율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례관리자에 대한 지지와 안전 확보하기가 중요하다. 즉, 고난도 사례에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저장장애 역시 가장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양한 압박감에 소진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슈퍼비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상담하거나 주거환경개선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안전 장비나 감염의 위험에 대한 검사나 치료비 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로 구성된 자원의 협력적 네트워크 조성, 통합사례회의를 통한 협력적 대응 등이 필요하다. 저장장애는 당사자와의 관계형성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치료 이슈, 학대나 방임 이슈,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행정적, 법적 이슈 등 다면적인 접근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역사회에서 구심점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협력체계를 구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적인 자원체계를 구축하고 이들과의 협력적 관계를 만들고 조율하는 등 간접적인 실천역량이 요구된다. 그러나 자원체계를 조직화하고 협력적 활동을 이루는 작업을 사례관리자의 개인적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업무매뉴얼, 조례제정 등도 필요하며, 특히 지역사회보장계획 등에 저장장애를 지원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자원 확충 및 협력체계를 공식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각 기관의 협력 목표는 저장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통합적인 노력을 다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제대로 갖춰질 때 비로소

“저장강박사례에 대한 주거환경개선 미담”에서 벗어나 지역주민의 삶의 온전성을 담보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